Rock Art of the Helan Shan

Rock Art of the Helan S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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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ysical graffiti

It seems to be a universal human impulse to decorate blank vertical surfaces with art. In the 1930s, lonely Basque shepherds in the western United States carved images of women from their hometowns in Spain into aspen trees (see “Mystery of the Arborglyphs,” one of the first articles Emma ever published). In cities ‘round the world, the words of spraycan prophets are written on the subway walls. Here in China, there are thousands upon thousands of cliffs, boulders and steles embellished with the striking characters of the Chinese 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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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ne tablets on the sacred mountain of Tai Shan in Shandong province

And in the mountains above the Yellow River, the ancient inhabitants of Ningxia carved thousands of images into the walls of the canyons they traversed as they moved between the Yellow River plain and the deserts of Mongolia. The Helan Shan is home to one of the richest concentrations of rock art in China. Since the 1980s Chinese archaelogists have discovered dozens of sites scattered among the valleys on the eastern slope of the range, and there are probably many sites still to be discovered.

The only one of these sites that is practically accessible to tourists is at Helan Kou, 58 kilometres northwest of Yinchuan, where there are over 5000 images carved into the rocks along a permanent watercourse. Accurate historical information on the site is a bit hard to come by (like much of what we see) – according to the interpretive signs at Helan Kou, the carvings are between 3000 and 10,000 years old, while a Professor of Chinese Art at Rhode Island School of Design contends they are mostly between 2500 and 1500 years old (see “Writing the Landscape: Petroglyphs of Inner Mongolia and Ningxia Province (China)”). Well, at least that rules out the years 500-2007 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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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y Rocky, watch me pull a rabbit out of my hat.”

Whatever their age, the carvings deal in some of the time-honoured themes of rock art worldwide, namely wildlife, domestic animals and scary faces. Unusually, there are also a handful of carvings with an agricultural the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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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unting scene, with what appears to be a ti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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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 goats running from their 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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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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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ead of grain, possibly millet

The carvings are fantastic in their detail, their degree of preservation, and in some cases, the delicacy of the carving. We don’t actually know anything about rock art, truth be told, but we do seem to spend a bit of time wandering around deserts where rock art is found, and whether in the American Southwest, Australia or here, we’ve rarely seen rock art carvings with lines as fine as the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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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꽃사랑 | 2007/07/09 10:35 | → 우리나라 | 트랙백(44308) | 덧글(1)

7大 불가사의 7일 공식 발표… 온라인 투표 7천만명 참여

그리스 아크로폴리스, 멕시코 마야 유적, 중국 만리장성, 페루 마추픽추, 요르단 페트라, 인도 타지마할, 로마 콜로세움, 파리 에펠탑, 영국 스톤헨지, 칠레 이스터섬(위부터).

〈새로운 7대 불가사의의 ‘영광’이 누구에게 돌아갈까. ‘신(新) 7대 불가사의’의 최종 발표가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불가사의 선정 행사를 진행해 온 스위스의 민간기구 ‘신 7대 불가사의 재단’은 오는 7일 그동안의 투표 내역을 집계해 세계의 불가사의한 문화유산 7개를 공식 발표한다.〉

전세계인을 상대로 한 온라인 투표라는 점에서 주목을 끈 이 행사는 고대의 7대 불가사의를 약 2200년 만에 대체하게 된다는 점에서도 흥미를 유발했다. 또한 이집트와 중국이 행사의 방식에 반발하고, 21곳의 최종 후보에 이름을 올린 일부 국가들이 국민들의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등 미묘한 신경전도 펼쳐졌다.

◇세계인의 축제?=지난달 28일자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에 따르면 신 7대 불가사의 최종 후보지 중 상위권을 달리고 있는 10곳은 그리스 아크로폴리스, 멕시코 마야 유적 치첸이트사, 중국 만리장성, 페루 마추픽추, 요르단 페트라, 인도 타지마할, 로마 콜로세움, 파리 에펠탑, 영국 스톤헨지, 칠레 이스터섬이다(무순위). 2005년말 발표된 21곳의 최종 후보지에는 이들 외에도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그리스도상, 미국 자유의 여신상, 호주 시드니오페라하우스, 스페인 알함브라 궁전 등이 포함돼 있다. 최종 후보지는 보편성과 다양성, 문화예술적 가치 등을 고려해 페데리코 마요르 자르고자 유네스코 전 총장과 일군의 건축 전문가들의 자문을 거쳐 국가당 한 곳에 한정해 선정됐다.

홈페이지에 접속하거나 전화 또는 문자메시지를 통해 누구나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 3일 현재 신 7대 불가사의 투표에 참여한 이는 70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7일 공식 발표 행사는 성대하게 치러진다. 포르투갈 리스본 에스타디오 다 루즈 경기장에서 이날 오후 9시30분(현지시간)부터 1시간30분에 걸쳐 열리는 행사의 진행은 할리우드 배우 힐러리 스웽크와 발리우드 스타 비파샤 바수 등이 맡고, 축하공연에는 제니퍼 로페즈, 샤카 칸 등 팝스타들과 호세 카레라스 등 세계 정상의 스타들이 출동한다.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과 열기구를 타고 세계일주한 탐험가 베르트랑 피카르 등도 특별 초청됐다.

◇각국의 물밑 경쟁=불가사의 선정 행사에 쏠린 관심만큼 논란도 적지 않았다.

먼저 이집트는 후보지 21곳에 기자의 쿠푸왕 대피라미드가 포함된 것에 반발하고 나섰다.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를 투표 대상에 올리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이유였다. 피라미드는 결국 ‘명예 유적’의 지위를 얻어 투표에서는 제외됐다.

중국 베이징에서 발행되는 신문 ‘신징바오’는 지난 5월30일 같은 사람이 문자메시지, 전화, 인터넷으로 모두 투표하더라도 따로따로 집계돼 ‘몰아주기’를 방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마침 올해 초 상위권에 들어 있던 만리장성의 순위가 점점 하락하는 시점에 제기된 주장이어서 의도가 불순하다는 지적을 피하지 못했다.

신 7대 불가사의 선정시 예상되는 경제적 및 무형적 효과를 노린 각국 지도자들의 참여 호소전도 열띠게 진행됐다. 브라질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대통령은 지난 5월 그리스도상이 선정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하자는 내용의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했다. 요르단 왕비도 고대 도시 페트라 유적의 선정을 위해 모든 아랍인이 투표할 것을 호소했다. 인도 등에서도 대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투표 캠페인이 활발히 벌어졌다.

영국 더 타임스는 신 7대 불가사의의 최종 승자는 역사적·건축학적 가치보다는 민족주의에 기반해 좌우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김유진기자 actvoice@kyunghyang.com〉

BC200년 수학자 필론이 선정

-피라미드만 남아… 77개 후보지 등록 압축중-

신 7대 불가사의의 원형이 되는 고대의 7대 불가사의는 BC330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원정 이후, 그리스인들에게 관광의 대상이 됐던 유명한 7개 건출물을 가리킨다. 7이라는 숫자는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완전함을 상징한다.

기원전 200년쯤 비잔틴의 수학자 필론의 저서로 알려진 ‘세계의 7대 경관’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필론이 선정한 7대 불가사의는 ▲이집트의 쿠푸왕 피라미드 ▲메소포타미아 바빌론의 공중정원 ▲올림피아의 제우스상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할리카르나소스의 마우솔로스 능묘 ▲로도스항구의 크로이소스 대거상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 등이다. 이 중에서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것은 이집트의 피라미드뿐이다. 게다가 지중해 인근에 편중돼 있고, 근대 이후 발견된 유적들이 빠져 있어 ‘세계’의 불가사의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런 지적을 바탕으로 ‘2000년 새로운 세기의 등장에 맞춰 신 7대 불가사의를 선정하자’는 운동이 스위스의 모험가인 베른하르트 베버에 의해 주창됐다. 2005년말 77개 후보지 중 21곳을 최종 후보로 압축, 온라인 투표가 진행 중이다. 공식사이트(www.new7wonders.com)에서 투표에 참가할 수 있다.

〈김유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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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꽃사랑 | 2007/07/03 21:16 | 트랙백 | 덧글(0)

파라오의 저주

투탄카멘의 황금 마스크
 


'황금마스크'보단 '파라오의 저주'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투탄카멘 파라오는 기원전 1343년 이집트 18왕조의 아메노피스 4세(일명 이크나톤)의 제2왕비 키야 사이에서 태어나 10세(기원전 1333년)의 나이에 파라오가 되어 20세에(기원전 1323년)에 사망했다.

왕가의 계곡(Valley of Kings)에 묻힌 채 수 천년 동안 잊혀졌던 투탄카멘은 사망한지 3245년 후인 1922년 10월 26일 영국의 카르나본 경과 고고학자 카터에 의해 거의 완벽한 상태로 발굴됐다.

이집트 파라오의 관에는 일반적으로 '사자의 안녕을 방해하는 자에게 저주가 있으라'라는 저주의 글이 쓰여있다. 이것이 이른바 파라오의 저주로 비약된 것이다.

파라오 저주의 첫 번째 희생자는 카르나본 경이었다. 미라가 있던 방을 개봉(1924년 2월 17일)한지 대략 6주후인 1924년 4월 5일에 공교롭게 카르나본 경은 투탄카멘의 얼굴에 나 있는 상처와 똑같은 부위를 모기에 물려 세상을 뜨고 말았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카르나본 경이 사망할 당시 카이로의 전등이 이유없이 꺼졌고 영국에 있던 카르나본 경의 테리어 개가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며 죽었었다는 것도 확인 되었다.


카터와 카르나본 경
이후 카터 및 카르나본 경과 관련된사람들이 연이어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발굴작업에 참여했던 아서 메이스라는 미국 고고학자가 카나본이 사망한 직후에 다시 사망하고, 미국의 유명한 민간 금융업자의 아들인 조지 J. 굴드도 무덤으로 안내된 다음에 다시 이튿날 고열로 눕고 그날로 죽었다.

조엘 울이라는 영국의 실업가도 무덤을 견학하고 귀국하던 도중에 고열로 죽었다.
투탄카멘의 미이라의 시체를 X선 촬영한 사진기사 아치볼드 더글라스 라이드도 1924년 영국으로 돌아가서 사망했다.




결국 1929년까지 카나본의 부인과 이복형제, 카터의 비서, 그리고 파라오의 후계자라고 우쭐대던 이집트 왕족 형제들을 포함해 관련자 약 30여 명이 세상을 떠났다. 그 중에는 자살하거나 살해된 사람들도 있었다.

'파라오의 저주'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969년 투탄카멘의 무덤 발굴 대원 중 유일한 생존자인 아담슨이 영국 텔레비젼 방송에 출연해 "나는 한 순간도 파라오의 저주라는 터무니 없는 전설을 믿어본 적이 없다"고 큰소리쳤다.

그러나 그는 출연을 마치고 돌아가던 중 교통사고로 간신히 목숨만 건졌다. 24시간이 지나기도 전 그의 부인이 죽었고 아들이 등뼈를 다쳤다.


파라오의 저주는 정말로 존재하는 것일까?
그리고 아직도 계속되고 있을까?


파라오의 저주'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이 시도되기 시작했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독약에 관한 전문가들이었다는 사실에 근거한 설도 있다. 피부에 스며들기만 해도 치명적인 독을 묘지 안의 벽을 칠할 때 사용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습게도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파라오 저주에 대한 전설이 조작됐다는 것이다.

실제 투탄카멘 파라오의 무덤발굴과 관련된 사람 1천5백 여명 중 10년 이내에 사망한 사람은 21명 뿐이다.

이들의 죽음도 자연사이거나 발굴과 관계없는 사람들의 죽음, 또는 우연한 죽음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특히 무덤을 최초로 개봉한 카터는 18년을 멀쩡하게 살다가 66세의 나이로 자연사했다.

투탄카멘의 저주에 대한 이야기는 카르나본 경이 발굴자금의 조달을 위해 런던 타임즈와 기사보도에 대한 독점계약권을 체결하고 돈을 지원 받자 이에 대한 악감정을 가진 다른 언론들이 때마침 죽은 카르나본 경의 죽음을 부풀려 보도하면서 비롯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파라오 관에는 '사자의 안녕을 방해하는 자에게 저주가 있으라'는 문구가 쓰여 있지만 이와 동시에 '왕의 이름을 알리는 자에게 복이 있으라'라는 글귀도 함께 쓰여 있다.

투탄카멘은 자신의 무덤이 후손들에 의해 영광스럽게 개봉되기를 기다려 왔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파라오의 저주........................는.....

발굴이 한창 무르익던 1923년 4월 6일 카나본이 모기에 물려 죽은 사건을 시작으로, 발굴에 끼었던 사람들이 하나씩 죽어 갔다. 그리고 그 당시 이집트의 카이로 시가 정전이 되었다. 온 세계의 신문들이 그것을 '파라오의 저주' 라고 떠벌리기 시작했다. 여기에 한가지 덧붙여서 영국의 카나본 경의 집에 있는 개가 갑자기 미친 듯이 짖다고 죽어버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들이 파라오의 저주로 각색되어 번지게된 것은 카나번 경의 잘못이 매우 크다. 우선 그는 기사의 독점권을 영국의 "타임즈"에 팔았다. 그 당시 이 발굴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언론은 그 기사를 타임즈를 통해서 얻어야 했다는 것에 매우 불만이 컸다. 그러므로 다른 신문사들은 다른 방법으로 직접 조사를 해야만 했고, 이때 카나본경이 죽자 이 내용을 부풀려서 기사화 한 것이었다. 카나번 경이 사망한 직후 아서 메이스라는 미국 고고학자가 사망했다. 그리고 미국의 유명한 민간 금융업자의 아들인 조지 J. 굴드도 무덤으로 안내된 다음날 고열로 눕고 그 날로 죽었다.

조엘 울이라는 영국의 실업가도 무덤을 견학하고 귀국하던 도중에 고열로 죽었다. 투탄카멘의 미이라를 촬영한 X선 기사 아치볼드 더글라스 라이드도 1924년 영국에서 사망했다. 이후에도 많은 관련자가 죽었다.

"파라오의 저주"를 책으로 낸 필립 반덴버그는 투탄카멘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거나 연관이 없이 죽은 사람을 모두 정리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많은 경우에 심신이 소모적인 상황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카터 자신도 우울증의 발작과 심신 소모에 시달리고 있었다. 저자는 고대 이집트의 신관이 수 천년간 효력이 지속될 수 있는 유독물질이나 세균류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 추측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죽기는 했지만 정말로 파라오의 저주란 증거는 사실상 거의 없다. 죽은 사람의 대부분이 나이가 들어서 죽은 경우와 우연을 제외하고 나면 별 신기한 것도 없으며, 발굴에 관련되어 있는 약 1500 여명의 사람 중에서 20명 남짓 죽은 것은 그다지 대단한 일이라고도 볼 수 없을 것이다. 카나본 경이 죽을 때 전기가 나갔다고 하지만 그 당시는 전기 사정이 매우 안좋았기 때문에 정전이 되도 문의조차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일부 사람들은 곰팡이에 의해서 죽었을 가능성도 말하기도 하지만, 곰팡이에 감염되면 대체로 곧바로 죽지 않고 한참 뒤에 죽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것도 설득력이 부족하다. 이집트 사람들이 천연의 독을 매우 잘썼기 때문에 그 독성으로 서서히 죽어갔다고 하는 사람도 있기는 있는데 그 역시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파라오의 저주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 그냥 보통의 평범한 죽음을 맞이하였을 것이다. 다만 파라오의 저주를 믿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저주를 받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다가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어하다가 결국 병이 걸려서 죽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 하더라도 발굴에 참여했던 사람들중..
소수일뿐.. 그많은 노동자들은 죽지않았다.
                       
                                                            [투탄카멘   CT촬영사진]


결론적으로 파라오의 저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책에서는 파라오의 저주가 어느 정도는 신빙성이 있는 것처럼 주장하기도 하고, 일부의 책에서는 관련된 몇 사람은 분명히 의문의 죽음을 당한 것으로 말하고 있으나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하겠다.



by 들꽃사랑 | 2007/06/30 07:42 | 미스테리 事件 | 트랙백(3) | 덧글(0)

Southwest Texas Lower Pecos 6.


The Lower Pecos region of Texas and northern Mexico is well known for the elaborate body of Native American mural art found along its deeply entrenched canyons. Amidst the splendid colorful paintings, one very different rock art site stands apart. Lewis Canyon is the only large petroglyph site yet discovered in this region, its abstract designs in many ways more enigmatic and mysterious than the paintings. Known to rock art enthusiasts since 1938 when Forrest Kirkland (Kirkland and Newcomb 1967) and A.T. Jackson (1938) recorded it for posterity, Lewis Canyon yielded more of its secrets when the Rock Art Foundation, (RAF) sponsored detailed photodocumentation and mapping of the site in 1991. A cluster of over 100 buried glyphs were unearthed, bringing the total number of individual designs to more than 900, and demonstrating for the first time that there were two stylistically and chronologically distinct episodes of glyph production.

The two petroglyph styles can now be differentiated by iconography, sophistication of design, horizontal distribution and relative elevation within the site. The older assemblage, here called the Lower Pecos Serpentine Style, is dominated by curvilinear lines, both separate and nested in series of two to four (Figure 3). Despite the prevalence of abstract designs, to some degree, this style favors composition and, in at least two cases, appears to be relating a story or mythic event. The most common representational motif, the atlatl or spear thrower, is of some use in determining the age of the Serpentine Style. In the Lower Pecos region, the atlatl was theoretically replaced by the bow and arrow, marking the shift from Archaic to Late Prehistoric, sometime between 1300 and 1000 years ago. Based on the frequent depiction of the atlatl, the Serpentine Style is tentatively considered to be Archaic in age, predating A.D. 600 to 1000.

At a slightly higher elevation, the second style is also composed of abstract geometric designs that concentrate in two areas with trailings of glyphs dispersed across the site. Over 770 glyphs are included in what is hereafter called the Lower Pecos Discrete Geometric Style. Despite their relatively clustered distribution, the individual designs are not conceptually joined by any other artistic device, such as the horizontal baselines, enclosures, or vertical separators so often used to differentiate conceptual space in petroglyph compositions (Ritter and Ritter 1994). There is no apparent rhyme or reason for the orientation of the designs nor any obvious relationship between them other than their generic abstractness. Whether angular or curvilinear, the lines are more irregular and tend to deviate from the principle of straightness or roundness in haphazard fashion. One of the larger motifs is purported to be a bow and arrow, which would imply a post-A.D. 600 age, but this identification is speculative. Three large projectile points found amid a jumble of geometric designs are not necessarily the work of the same people, and they do not with any certainty conform to well-dated stone tool types of the region, despite occasional claims to the contrary. Nevertheless, the Discrete Geometrics are apparently more recent than the long-buried Serpentine Style and may date as recently as the Late Prehistoric period, after the advent of the bow and arrow.

Lewis Canyon presents a number of interpretive obstacles. With the exception of two clusters of glyphs in the older Serpentine Style, no storyline or coherent relationships leap to meet the eye. The few realistic figures are lost amid a swarm of abstract designs whose meaning is not immediately apparent to the modem viewer. Even more problematic is the singularity of Lewis Canyon. The art of preliterate people is almost always a reflection of their cultural system and, as is the case in the well-known pictographs, identified as ritual art by the repetition of themes and motifs to the point of redundancy. This is apparent within both sets of glyphs, implying that they are a form of symbolic communication that was probably understood at the community or ethnic level




The Lower Pecos region of Texas and northern Mexico is well known for the elaborate body of Native American mural art found along its deeply entrenched canyons. Amidst the splendid colorful paintings, one very different rock art site stands apart. Lewis Canyon is the only large petroglyph site yet discovered in this region, its abstract designs in many ways more enigmatic and mysterious than the paintings. Known to rock art enthusiasts since 1938 when Forrest Kirkland (Kirkland and Newcomb 1967) and A.T. Jackson (1938) recorded it for posterity, Lewis Canyon yielded more of its secrets when the Rock Art Foundation, Inc. (RAF) sponsored detailed photodocumentation and mapping of the site in 1991. A cluster of over 100 buried glyphs were unearthed, bringing the total number of individual designs to more than 900 and demonstrating for the first time that there were two stylistically and chronologically distinct episodes of glyph production.

The two petroglyph styles can now be differentiated by iconography, sophistication of design, horizontal distribution and relative elevation within the site. The older assemblage, here called the Lower Pecos Serpentine Style, is dominated by curvilinear lines, both separate and nested in series of two to four (Figure 3). Despite the prevalence of abstract designs, to some degree, this style favors composition and, in at least two cases, appears to be relating a story or mythic event. The most common representational motif, the atlatl or spear thrower, is of some use in determining the age of the Serpentine Style. In the Lower Pecos region, the atlatl was theoretically replaced by the bow and arrow, making the shift from Archaic to Late Prehistoric, lifeways sometime between 1300 and 1000 years ago. Based on the frequent depiction of the atlatl, the Serpentine Style is tentatively considered to be Archaic in age, predating A.D. 600 to 1000.

At a slightly higher elevation, the second style is also composed of abstract geometric designs that concentrate in two areas with trailings of glyphs dispersed across the site. Over 770 glyphs are included in what is hereafter called the Lower Pecos Discrete Geometric Style. Despite their relatively clustered distribution, the individual designs are not conceptually joined by any other artistic device, such as the horizontal baselines, enclosures, or vertical separators so often used to differentiate conceptual space in petroglyph compositions (Ritter and Ritter 1994). There is no apparent rhyme or reason for the orientation of the designs nor any obvious relationship between them other than their generic abstractness. Whether angular or curvilinear, the lines are more irregular and tend to deviate from the principle of straightness or roundness in haphazard fashion. One of the larger motifs is purported to be a bow and arrow, which would imply a post-A.D. 600 age, but this identification is speculative. Three large projectile points found amid a jumble of geometric designs are not necessarily the work of the same people and they do not with any certainty conform to well-dated stone tool types of the region, despite occasional claims to the contrary. Nevertheless, the Discrete Geometrics are apparently more recent than the long-buried Serpentine Style, and may date as recently as the Late Prehistoric period, after the advent of the bow and arrow.

Lewis Canyon presents a number of interpretive obstacles. With the exception of two clusters of glyphs in the older Serpentine Style, no storyline or coherent relationships leap to meet the eye. The few realistic figures are lost amid a swarm of abstract designs whose meaning is not immediately apparent to the modem viewer. Even more problematic is the singularity of Lewis Canyon. The art of preliterate people is almost always a reflection of their cultural system and, as is the case in the well-known pictographs, identified as ritual art by the repetition of themes and motifs to the point of redundancy. This is apparent within both sets of glyphs, implying that they are a form of symbolic communication that was probably understood at the community or ethnic level.





The Lower Pecos region of Texas and northern Mexico is well known for the elaborate body of Native American mural art found along its deeply entrenched canyons. Amidst the splendid colorful paintings, one very different rock art site stands apart. Lewis Canyon is the only large petroglyph site yet discovered in this region, its abstract designs in many ways more enigmatic and mysterious than the paintings. Known to rock art enthusiasts since 1938 when Forrest Kirkland (Kirkland and Newcomb 1967) and A.T. Jackson (1938) recorded it for posterity, Lewis Canyon yielded more of its secrets when the Rock Art Foundation, Inc. (RAF) sponsored detailed photodocumentation and mapping of the site in 1991. A cluster of over 100 buried glyphs were unearthed, bringing the total number of individual designs to more than 900 and demonstrating for the first time that there were two stylistically and chronologically distinct episodes of glyph production.

The two petroglyph styles can now be differentiated by iconography, sophistication of design, horizontal distribution and relative elevation within the site. The older assemblage, here called the Lower Pecos Serpentine Style, is dominated by curvilinear lines, both separate and nested in series of two to four (Figure 3). Despite the prevalence of abstract designs, to some degree, this style favors composition and, in at least two cases, appears to be relating a story or mythic event. The most common representational motif, the atlatl or spear thrower, is of some use in determining the age of the Serpentine Style. In the Lower Pecos region, the atlatl was theoretically replaced by the bow and arrow, making the shift from Archaic to Late Prehistoric, lifeways sometime between 1300 and 1000 years ago. Based on the frequent depiction of the atlatl, the Serpentine Style is tentatively considered to be Archaic in age, predating A.D. 600 to 1000.

At a slightly higher elevation, the second style is also composed of abstract geometric designs that concentrate in two areas with trailings of glyphs dispersed across the site. Over 770 glyphs are included in what is hereafter called the Lower Pecos Discrete Geometric Style. Despite their relatively clustered distribution, the individual designs are not conceptually joined by any other artistic device, such as the horizontal baselines, enclosures, or vertical separators so often used to differentiate conceptual space in petroglyph compositions (Ritter and Ritter 1994). There is no apparent rhyme or reason for the orientation of the designs nor any obvious relationship between them other than their generic abstractness. Whether angular or curvilinear, the lines are more irregular and tend to deviate from the principle of straightness or roundness in haphazard fashion. One of the larger motifs is purported to be a bow and arrow, which would imply a post-A.D. 600 age, but this identification is speculative. Three large projectile points found amid a jumble of geometric designs are not necessarily the work of the same people and they do not with any certainty conform to well-dated stone tool types of the region, despite occasional claims to the contrary. Nevertheless, the Discrete Geometrics are apparently more recent than the long-buried Serpentine Style, and may date as recently as the Late Prehistoric period, after the advent of the bow and arrow.

Lewis Canyon presents a number of interpretive obstacles. With the exception of two clusters of glyphs in the older Serpentine Style, no storyline or coherent relationships leap to meet the eye. The few realistic figures are lost amid a swarm of abstract designs whose meaning is not immediately apparent to the modem viewer. Even more problematic is the singularity of Lewis Canyon. The art of preliterate people is almost always a reflection of their cultural system and, as is the case in the well-known pictographs, identified as ritual art by the repetition of themes and motifs to the point of redundancy. This is apparent within both sets of glyphs, implying that they are a form of symbolic communication that was probably understood at the community or ethnic level

by 들꽃사랑 | 2007/06/27 19:26 | → 北美 | 트랙백 | 덧글(0)

Southwest Texas Lower Pecos 5.


An initial fascination with all things European is evident at Vaquero Shelter where a mission church, longhorn cattle, and cowboys with lariats are meticulously drawn. Considerable attention was paid to articles of clothing, such as epaulettes, hat, buttons, boots, and pipe of the Spanish Official




An initial fascination with all things European is evident at Vaquero Shelter where a mission church, longhorn cattle, and cowboys with lariats are meticulously drawn. Considerable attention was paid to articles of clothing, such as epaulettes, hat, buttons, boots, and pipe of the Spanish Official




Plains Indians brought their characteristic style of picture writing, including shield-bearing figures, to the Lower Plains early in the 18th century. This line of dancing figures, watched by a frocked friar, is but one of a myriad of historic Plains vignettes at Meyers Springs, west of the Pecos River. A smaller version at Bailando Shelter indicates the popularity of this theme




Increasing familiarity with the European ways led to real and fantasized violence. Here, a rider whose hat and ornate Spanish bridal suggest that he is white, is obliterated by a huge red spear that X's him out so to speak




The thunderbird is a famous character in Native American myth. This historic pictograph was painted above a reflective pond where its mirror image flies on the water




Over a period of at least four millennia, the people, whether indigenous or intrusive, who lived near the juncture of los tres rios, painted their worldview, their concept of the social order, and their way of life on the rockshelter walls. Whether stimulated to imitate the ancient ones or by artistic impulses inherent in their own culture, at least three new and different styles of cave painting postdate the Pecos River shamanic art. Each mirrors different concerns of such complexity that another photographic essay would be required to explore their iconography and ideology. The last of the native peoples were the Plains warrior tribes who in their days of glory lived according to two seasons of the year -- the time to hunt buffalo and the time to raid the ranches and settled communities across the Rio Grande. Hunted to extinction, man and beast, theirs is the final portrait of the indivisible dual nature of animal-human painted on the limestone canvas of los tres rios. Clad in his buffalo robe, the impersonator shaman dances erect on human feet beside the man who cannot see him. Although it may not have been the artist's intent, this painting reflects the ultimate destiny of an ancient religious tradition brought to the New World by one people and destroyed by the coming of another

by 들꽃사랑 | 2007/06/27 19:24 | → 北美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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